 영국과 독일의 전함 경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카이저 빌헬름 2세(재앙)가 '세계정책(Weltpolitik)'이라는 팽창주의·제국주의 노선을 천명하면서, 독일 해군은 황제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해군 건설을 총괄하게 된 인물이 바로,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였다.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그는 제1차·제2차 해군법을 통해 독일 제국 해군의 대규모 확장을 제도화했다. 이 법안들은 독일 해군력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되었고 결국 영국과 독일의 건함 경쟁에 불을 붙이는 신호탄이 된다.  1898년 제1차 해군법 제1차 해군법에서 독일이 목표로 삼은 전력은 전함 19척이었다. 물론 작은 숫자는 아니었으며. 당시 영국 해군은 현역 전함과 건조 중인 전함만 합쳐도 약 39척, 2선급 전함과 예비 전력까지 포함하면 무려 72척에 가까운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그 러나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은 1900년 제2차 해군법이었다. 제2차 해군법에서 독일이 목표로 삼은 전력은 전함 39척으로. 당시 영국 해군은 전함 약 45척을 보유하고 있었고, 2선급·3선급 전함과 예비 전력까지 모두 포함하면, 1902년 기준으로 약 69척에 달했다. 하지만 독일의 계획대로 건함이 진행된다면, 독일은 단숨에 영국 해군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규모의 함대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는 당시 세계 2위와 3위 해군력을 합친 것보다 강한 해군을 유지한다는 영국의 ‘2개국 표준 함대 전략’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영국은 결국 이에 맞불을 놓게 된다.    (실제 드레드노트급 전함 사진) 마침내 1906년, 영국은 ‘드레드노트급 전함’ 을 취역시킨다. 이 전함은 단순한 신형 전함이 아니었으며. 말 그대로 해군사의 판도를 바꿔버린 ‘게임 체인저’ 였다. 드레드노트급의 특징 1.주포 통일: 기존 전함은 포의 구경이 뒤섞여 있어서 장거리 사격 때 탄착 확인이 복잡. ->반면 드레드노트급은 대구경 주포를 통일해서 먼 거리에서도 일제사격이 쉽고, 화력 집중이 훨씬 강함 2.속도와 기동력 향상 ->드레드노트는 당시 최신식 증기터빈을 사용해서 기존 왕복식 증기기관 전함보다 더 빠르고 진동도 적었다. ->한마디로 속력,크기,화력 모든 부분에서 기존 전함이 드레드노트급의 하류판 되버린 셈   하지만 독일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보았다. 그동안 영국이 보유하던 수많은 전함들이 순식간에 구식 전력으로 밀려났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영국과 독일 모두가 이제 ‘0’에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는 뜻 . 기존 함선 수에서 열세였던 독일 입장에서는 오히려 드레드노트 시대의 개막이 영국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였다. 이에 독일도 재빠르게 자신들만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사우급 을 건조하며 본격적인 신형 전함 경쟁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독일제국의 나사우급 전함) 결과적으로 영국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통해 건함경쟁에서 우위를 점할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독일의 건함 의지만 상승시키게되며 더더욱 양상이 격화된다.  영국 드레드노트급의 발전 기준: 드레드노트 취역 이후부터 개전 직전까지 드레드노트 → 오라이언 → 퀸 엘리자베스 → 리벤지 주포 크기 역시 12인치 → 13.5인치 → 15인치 → 15인치 완성형 으로 발전했다. 영국은 드레드노트를 포함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순양전함에도 크고 우람한 주포, 빠른 속도, 긴 사거리 같은 공격적 스탯 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순양전함의 경우, 속도와 화력을 얻는 대신 방어력을 어느 정도 포기한 양상이 강했다. 왜냐하면 영국 해군의 활동 범위는 무려 ‘전 세계’ 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와 긴 리치가 요구되었고, 여기에 영국 본인들의 화력박이 기질까지 더해지면서, 영국 해군은 자연스럽게 화력과 사거리, 속도에 집착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영국은 공격,기동성 중심의 해군 운영  독일 드레드노트급의 발전 기준: 나사우급 취역 이후부터 개전 직전까지 나사우 → 헬골란트 → 카이저 → 쾨니히 → 바이에른 주포 크기는 11인치 → 12인치 → 12인치 → 12인치 → 15인치 로 발전했다. 영국과 다른 독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특징은 영국이 화력, 속도, 사거리 스탯 몰빵이라면 독일은 방어력, 생존성, 포탄의 관통력 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유는 독일의 활동 반경은 영국처럼 전 세계가 아니었다. 주 전장은 북해와 발트해이며 그리고 독일 해군이 상정한 상대는 대부분 영국 본국함대 로 그렇기 때문에 독일 전함은 먼 바다를 장거리 순항하기보다는, 북해라는 제한된 전장에서 영국함대에게 자기들이 나오면 쳐맞는 구도여도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즉, 독일 드레드노트급은 “더 멀리, 더 빠르게 때리는 함대” 라기보다는, “맞아도 버티고, 가까운 거리에서 확실하게 뚫는 함대” 에 가까웠다. 독일은 방어력,관통력 중심의 안정적인 운영  개전 직전의 상황(건조 중 상황 포함) *드레드노트급+순앙전함 기준 영국->34척(드레드노트 24척 순양전함 10척) 독일->21척(드레드노트 17척 순양전함 4척) 언뜻보면 독일이 제법 해볼 수 있는 구도  그러나 당시 영국해군 총 전력 드레드노트 20척 + 전드레드노트 50척 + 순양전함 9척 + 순양함 136척 + 구축함 142척 + 잠수함 80척+기타등등 =약 620척... 당시 독일해군 총 전력 드레드노트 13척 + 전드레드노트 30척 + 순양전함 4척 + 순양함 57척 + 구축함/어뢰정 243척 잠수함 약 45척 + 기타등등 = 약 389척   하지만 독일 입장에서도 마냥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독일 해군의 주 활동 무대는 북해였고, 전력을 투사해야 할 범위도 영국에 비해 훨씬 좁았다. 단순한 전체 전력 구도로만 보면 영국과 독일은 대략 7:3 정도의 차이가 나 보였지만 영국은 전 세계 곳곳에 함선을 분산 배치해야 했고 반대로 독일은 북해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 점까지 고려하면 북해 한정으로는 6 :4까지 뇌피셜을 굴려볼 수 있을 정도로 비벼진다 고 볼 여지도 있었다. 즉, 독일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다” 개전 직전 영국,독일의 장/단점  1. 압도적인 투사력 영국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와 해군 기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보급과 전력 보충이 가능했다. 2. 압도적인 인프라 영국은 오랫동안 해군 강국으로 군림해 온 짬이 있었고, 그만큼 조선소, 항만, 보급망, 정비 시설 같은 해군 관련 인프라도 독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했다. 3. 지리적 이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영국은 북해만 딸깍 틀어막아도 독일에 대한 해상 봉쇄가 가능했다. 또한 브리타니아섬이라는 위치 자체가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 나아가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기 좋은 사기적인 지리적 거점이었다. 단점  1. 전력 누수 그러나 영국은 식민지와 해상 교통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전력을 북해에만 투사할 수는 없었다. 전 세계 곳곳에 함선을 배치해야 했고, 그만큼 북해에 집중할 수 있는 전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2. 노쇠화된 인프라로 인한 기술 격차 또한 영국은 너무 오래전부터 산업화와 해군 강국의 길을 걸어온 탓에, 기존 산업 인프라가 노후화된 부분도 있었다. 반면 독일은 후발 산업국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최신식 설비와 공업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분야에서는 독일이 영국보다 더 효율적이고 현대적인 생산 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영국은 이 부분에서 독일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독일 해군의 장점 1. 전폭적인 지지 독일 해군은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카이저는 말 그대로 해군빠였고, 동시에 영국빠이면서도 영국까에 가까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영국 해군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독일이 영국처럼 세계적인 해군 강국이 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황제의 지지는 독일 해군 확장의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 되었다. 2. 북해만 뚫으면 되는 이점 독일은 영국과 달리 전 세계 바다를 모두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은 식민지와 해상 교통로를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에 함대를 분산시켜야 했지만, 독일은 기본적으로 북해에 전력을 집중하면 되었다. 즉, 독일 입장에서는 영국 해군 전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해에 투입되는 영국 본국함대를 상대로 승부를 걸면 되는 구조였다. 이 점은 전체 해군력에서 열세였던 독일에게도 “북해 한정으로는 비벼볼 수 있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했다.  단점 1. 절망적인 지리적 환경 반대로 말하면, 북해가 막히는 순간 독일 해군은 답이 없어졌다. 독일 해군의 주 활동 무대는 북해였지만, 그 북해의 출구를 영국이 틀어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일은 지리적으로 매우 불리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2. 독일 육군의 존재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끼인 구조였다. 즉, 서쪽으로는 프랑스, 동쪽으로는 러시아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독일 육군의 비중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해군에 사실상 올인할 수 있었던 영국과 달리, 독일은 한정된 재화를 육군과 해군에 나누어 투입해야 했다. 그 결과 독일 해군은 황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체의 전략 구조상 영국처럼 해군에 모든 자원을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군에서 둘은 영끝을 한 뒤 시간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가기 시작한다. 번외로 당시 열강들의 해군력 *대략적인 수치 기준 미국-> 210척 프랑스->320척(단, 드레드노트는 고작 4척으로 질에서 밀리는편) 러시아->230척 오헝->158척 일본-> 113척 *당시 세계 3위 해군 국가는 미국이냐 프랑스냐로 갈리지만 영국 이 미친놈들은 1차대전 끝까지 2개국 표준 함대를 지킨 것이다... 많이 부족한 내용임에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잘못된 내용 지적은 늘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1차대전 해전의 개막, 헬골란트 해전과 남미에서 발발한 영독간의 해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마무리 서비스신(중요)  (양면전선)  브리타니아 누나...헤으응  산업화 조지는 오헝순이 열강들 평상복 ver  [https://www.fmkorea.com/10059150216](https://www.fmkorea.com/10059150216) <-영독건함경쟁 "배경" [https://www.fmkorea.com/10066254948](https://www.fmkorea.com/10066254948) <-영독건함경쟁 "블루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