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6년 허버트 윈스테드 경이라는 탐험가가 벨기에령 콩고로 탐험을 떠났다. 그는 고릴라를 신으로 숭배하는 야만 부족과 조우했다. 충격적이게도 이 야만 부족은 부족 여자를 고릴라신에게 성노예로 바치는 미개하기 짝이 없는 의식을 수행했다. 허버트 윈스테드 경은 이 충격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녹화하였다. 나아가 탐험 준비 과정, 야만 부족을 만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잉가지' 라 불리는 야만인들이 숭배하는 고릴라와의 전투, 문명인답게 성노예로 바쳐진 흑인 여성을 구하는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겼다.  그리고 1930년, 허버트 윈스테드 경이 찍어 온 필름을 편집한 다큐멘터리, '잉가지' 가 공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미개한 아프리카 부족의 야만적인 풍습, 특히 고릴라에게 성노예로 바쳐지는 흑인 여성들의 모습을 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문화적 상대주의니 뭐니 해도 여성을 고릴라한테 성노예로 바치는 풍습은 개노답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고, 그 불쌍한 여성을 구한 백인들의 행동은 영웅적이었다. 그렇게 성노예로 바쳐진 불쌍한 흑인 여성과 그녀를 범하려 한 고릴라, 그리고 위대한 백인 영웅들의 위업은 다큐멘터리로 기록되어 영원히 남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구라다. 하지만 본인이 창작한 구라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아니 페이크 다큐멘터리 '잉가지'를 만든 제작사 Congo Pictures가 당당히 친 구라다. 이들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잉가지'를 극장에 걸면서 이것이 실화라고 주장했고, 나아가 필름 속 내용도 연출이 아닌 진짜라고 주장했다.  물론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이건 실화고, 찍힌 것도 전부 진짜라고 주장하는 건 흔한 일이다. 이런 마케팅으로 가장 유명한 블레어윗치가 1999년에 나왔는데, 그보다 무려 69년이나 앞서 개봉한 '잉가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익스플로테이션 필름, 곧 싸구려로 자극적인 소재를 찍어 팔아치우는 장르에서도 '잉가지'는 선구자 중 하나로 여겨진다. 수십년 후 질리도록 나올 '문명인이 정글로 갔다가 별별 야만적인 걸 다 보고 왔거나, 혹은 거기서 죽었습니다' 류 영화의 초기 형태 중 하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잉가지는 나름 선구자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미친듯이 욕을 퍼먹었다. 그저 페이크 다큐멘터리인데 진짜인 양 구라를 쳤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말 할 것도 없고, 당시 기준으로 봐도 제작사의 행태가 너무나도 추했기 때문이다.  잉가지의 제작사는 다음과 같은 짓을 저질렀다. 1. 영상의 상당 부분을 1915년 기록 영상 '아프리카의 심장'에서 무단으로 가져와 사용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의 심장을 만든 감독의 아들이 제작사에 소송을 걸었다. 더 골때리는 건, '아프리카의 심장'의 감독 '그레이스 매켄지'도 사기꾼이었다. 사기꾼이 만든 논란 많은 기록 영상을 불법적으로 마구 가져와 쓴 것. 2. 작중 그때껏 발견된 적 없는 신종 동물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 동물은 거북이에 가짜 날개와 비늘을 붙여 만들었다. 3. 남의 것을 훔쳐오지 않은 영상 대부분을 LA 동물원(그리피스 파크 동물원)에서 찍었다. 4. 작중 등장하는 고릴라는 다른 영상에서 가져왔거나, 고릴라 옷을 입은 배우가 연기했다. 5. 작중 등장하는 흑인 여성 일부는 백인이 흑인 분장을 하고 연기했다. 6. 연기자 중에는 출연료를 못 받았다며 영화사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개노답이었고, 아무리 흑백영화 시대라도 당시 사람들이 이 따위로 만든 걸 보고 진짜 아프리카에서 찍은 리얼 다큐멘터리라고 오랫동안 믿어줄 리 없었다.  이렇게 개봉 전부터 온갖 추한 꼴은 다 보여준 제작사의 추태는 개봉 후 절정에 달했다. 이딴 게 어떻게 리얼 다큐멘터리냐고 꼬집는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제작사는 추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당시 미국 영화사들이 모여 만든 '미국영제작배급사협회'가 영화의 진위성에 의문을 표하는 보고서를 유포했다며 수백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를 걸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가 직접 잉가지를 털기에 이르렀고, 리얼 다큐이기는 커녕 페이크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잉가지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제작사의 모든 홍보자료 등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잉가지는 유통이 중단되었고, 이 제제는 1947년까지 지속되었다. 사실 잉가지는 개봉 당시 나름 흥행을 했다지만, 성공작이라 하긴 어렵다. 일단 앞서 언급한 ' 아프리카의 심장' 측의 소송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했다. 또 한참 상영을 할 때 온갖 논란에 휩싸여 상영이 중단되었고, 1947년까지 유통 중단 조치를 당하며 돈 벌 길이 완전히 막혔기 때문이다. 결국 훗날 재발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잊혀졌다. B급 영화와 익스플로테이션 영화에 환장하는 본인의 시각에서 볼 때, 잉가지는 초기 페이크 다큐멘터리이자. 익스플로테이션 필름으로써 선구자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준은 말 할 것도 없고 20세기 초 기준으로도 도에 지나친 도덕적 해이와 제작사의 개노답 추한 행보는 결국 이 영화를 선구자적인 작품이라기 보다는 한 편의 사기극 취급이나 받으며 잊혀지게 만들었다.  (로튼 토마토의 잉가지 리뷰) 또 하나 큰 문제는 작품이 진짜로, 진짜로 개망작이라는 거다. 이걸 보고 나면 역시 논란이 많은 소위 사상 최초의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가 얼마나 잘 만든 작품인지 실감할 수 있다. 끔찍한 연출력과 허접한 만듦새, 주제조차 갈팡질팡하고 자극적인 장면조차 제대로 못 찍어서 도파민 분출조차 실패한, 봐줄 구석이 전무한 영화니 말이다. 영화사 초기의 한 흥미로운 단면이라고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많지만, 영화 자체는 진짜로 끔찍하다. 나온지 100년 가까이 된 작품이라 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냥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딱 한 부류의 사람에게만 권할 수 있을 뿐이다. 똥을 직접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똥믈리에. 평점 : 1/10